채근담(菜根潭)
1. 자연편(自然篇)
바람이 성긴 대숲에 오매 바람이 지나가면 대가 소리를 지니지 않고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지나매 기러기 가고 난 다음에 못이 그림자를 머무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기 면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나니라.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度寒潭 雁去而潭不留影 故 君子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
풍래소죽 풍과이죽불유성 안도한담 안거이담불유영 고 군자 사래이심시현 사거이심수공
법도 도, 건널 도, 헤아릴 탁
대숲은 얇은 바람결에도 소리를 내지만 바람이 가고 나면 고요해진다. 못물은 무엇이든지 떠오르면 비치지만 가고 나면 아무런 자취가 없다. 군자의 마음도 대숲과 못물과 같으니 사 물이 오면 응접하되 간 뒤에는 거리낌이 없다. 연연히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어지러운 세 상에 자재함을 얻을 것이다.
수신서(修身書)가 아닌 선시(禪詩)를 읽는 감동을 안겨 주는 구절이다. 문장이 너무나 뚜렷 하게 이미지(Image)를 담아내고 있어 언제 읽어도 그림을 본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문장 이기도 하다. 채근담의 많은 구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2
산림(山林)에 숨어 삶을 즐겁다 하지 말라. 그 말이 아직도 산림의 참맛을 못 깨달은 표적이 라. 명리(名利)의 이야기를 듣기 싫다 하지 말라. 그 마음이 아직도 명리의 미련을 못 다 잊 은 까닭이라.
談山林之樂者 未必眞得山林之趣 厭名利之談者 未必盡忘名利之情
담산림지락자 미필진득산림지취 염명리지담자 미필진망명리지정
7
"나에게 한 권의 경(經)이 있나니 종이와 먹으로 이룬 것이 아니로다. 활짝 펴 놓아도 글자 한 자 없건마는 항상 큰 광명이 예서 퍼져 나가노라"라는 글이 있다. 이 경(經)은 천지자연 경(天地自然經)이다.
8
사람들은 모두 글자 있는 책만 읽을 줄 알고 글자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른다.
人 解讀有字書 不解讀無字書
인 해독유자서 불해독무자서
10
꽃이 활짝 피면 시들고 달도 차면 기울듯이 모이면 마침내 흩어지고 흥이 다하면 반드시 슬 픔이 온다.
13
석화(石火)같이 빠른 빛 속에 길고 짧음을 다툼이여, 이긴들 얼마나 되는 광음(光陰)이뇨. 달팽이 뿔 위에서 자웅(雌雄)을 겨룸이여, 이겨 본들 얼마나 되는 세계뇨.
石火光中 爭長競短 幾何光陰 蝸牛角上 較雌論雄 許大世界
석화광중 쟁장경단 기하광음 와우각상 교자논웅 허대세계
장자에 이르기를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를 정하고 있는 자 있으니 촉씨(觸氏)라 하며 달 팽이 오른쪽 뿔에 나라를 정한 자 있으니 만씨(蠻氏)라고 한다. 때에 서로 땅을 다투어 싸우 니 시체 수만이라"는 글이 있다.
14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아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도다. 불의(不義)로 부 (富)하고 또 귀(貴)함은 나에게 있어 뜬구름 같도다"라는 구절이 논어(論語)에 있다. 부귀를 뜬구름같이 보면서도 세상을 버리고 심산궁곡(深山窮谷)에 숨지 않고, 수석(水石)의 가경(佳 境)에 병드는 버릇이 없으면서도 항상 술에 취하고 시를 즐길 줄 알아야 한 곳으로 치우치 지 않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할 수 있을 것이다.
15
법(法)은 일체만물이니 나타난 것의 총칭이요, 공(空)은 공적이니 나타난 것의 바탕이다. 있 음에 집착함이 법전(法纏)이요, 없음에 붙잡힘이 공전(空纏)이다.
18
움직임을 좋아하는 이는 구름 속 번개 같고 바람 앞의 등불 같다. 고요함을 즐기는 이는 차 가운 재 같고 마른 나무 같다. 모름지기 멈춘 구름 속에 소리개 날고 잔잔한 물 위에 고기 뛰는 기상이 있어야 하리라.
好動者 雲電風燈 嗜寂者 死灰槁木 須定雲止水中 有鳶飛魚躍氣象
호동자 운전풍등 기적자 사회고목 수정운지수중 유연비어약기상
고는 마를 고, 말라 죽은 나무 고. 연은 소리개 연. 종이로 만든 연 연.
19
소나무 우거진 시냇가에 지팡이를 짚고 홀로 간다. 서는 곳마다 구름은 찢어진 누비옷에 일 어나느니. 대수풀 우거진 창가에 책을 베개 삼아 편히 눕는다. 깨고 보니 달빛이 담요를 비 취누나.
松澗邊 携杖獨行 入處 雲生破衲 竹窓下 枕書高臥 覺時 月侵寒氈
송간변 휴장독행 입처 운생파납 죽창하 침서고와 각시 월침한전
간은 산골물 간. 전은 솜털로 만든 모직물이나 요. 모전 전. 한전(寒氈)은 낡은 담요. 헤진 담요.
27
'수천일색(水天一色)'은 왕발(王勃)의 등왕각서(?王閣序)에 있는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 天一色)"에서 나온 말이요, '상하공명(上下空明)'은 소동파의 적벽부 주(註)에서 "추수(秋水) 는 맑아서 본저(本底)를 본다, 달이 수중에 있는 것을 공명(空明)이라 한다"고 하였다.
28
"풍타지죽 낭타죽(風打之竹 浪打竹)"이란 시가 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라는 뜻 의 기문(奇文)이다.
32
옛 고승이 이르기를 "대 그림자 축대 위를 쓸어도 티끌은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못을 뚫어 도 물에는 자취가 없다"하였다.
古德 云 竹影掃 塵不動 月輪穿沼 水無痕
고덕 운 죽영소계 진부동 월륜천소 수무흔
마음이나 욕망에 대한 절제(節制)가 심하면 크게 기뻐하거나 슬퍼할 수가 없었다.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이 항상 검열(檢閱)을 받게 되는 셈이니까 사는 재미가 크지 않았다.
34
옛말에 "사나운 짐승은 길들이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항복받기 어렵고 깊은 골짝은 채우 기 쉬워도 사람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하더니 참말이로다.
語云 猛獸易伏 人心難降 谿壑易滿 人心難滿 信哉
어운 맹수이복 인심난항 계학이만 인심난만 신재
38
여우는 무너진 축대(築臺)에서 잠자고 토끼는 황폐한 전각(殿閣)에 달리나니, 아! 이는 당년 (當年) 가무(歌舞)하던 터전이로다. 이슬은 황국(黃菊)에 싸느랗고 연기는 마른 풀에 감도나 니 이 모두다 그 옛날 전쟁(戰爭)하던 땅이로다. 성쇠(盛衰)가 어찌 영원함이 있으며 강약 (强弱)은 또 어디 있는고. 매양 이를 생각함이여! 사람의 마음을 싸느랗게 하는도다.
狐眠敗 兎走荒臺 盡是當年歌舞之地 露冷黃花 煙迷衰草 悉屬舊時爭戰之場 盛衰何常 强弱安 在 念此 令人心灰
호면패체 토주황대 진시당년가무지지 노냉황화 연미쇠초 실속구시쟁전지장 성쇠하상 강약안 재 념차 영인심회
섬돌, 돌계단 체. 성자필멸(盛者必滅)? 소련이 삽시간에 망한 것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망할 조짐은 커녕 쇠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일본도 2차대전에서 패배하는 타격을 입었으나 타격도 아 닌 양 다시 일어서서 잘 살고 있다. 차라리 새옹지마(塞翁之馬)인 것을.
43
백낙천(白樂天)이 말하기를 "뜻은 아무 일 없을 때가 쾌적하고 바람은 절로 오는 산들바람 이 맑아서 좋다"고 했다. 맛있고나 그 말씀이여!
白氏云 意隨無事適 風逐自然淸 有美哉 其言之也
백씨운 의수무사적 풍축자연청 유미재 기언지야
그러므로, 아무 일 없을 때가 제일 즐겁고 기약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이 제일 반가우며, 까닭 없이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고, 절로 부는 바람이 제일 시원한 것이다.
술은 심심하여 마시는 술이 맛이 있다. 불우해서 마시거나 청탁 때문에 마시는 술은 맛이 덜하다. 그건 그렇고 뒷 구절의 멋스런 번역엔 정말 감복하겠다. 그리운 지훈 선생이여! 사 람은 죽고 나면 되살아 날 수 없는 것...
52
글은 졸(拙)함으로써 나아가며 도(道)는 졸(拙)함으로써 이루어지나니 이 하나의 졸자(拙字) 에 무한한 뜻이 있다.
文以拙進 道以拙成 一拙字有無限意味
문이졸진 도이졸성 일졸자유무한의미
글과 도(道)와 사람은 능란한 것보다 졸(拙)한 것을 높게 친다.
53
은일(隱逸)의 청흥(淸興)은 유유자적(悠悠自適)에 있다.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음으로써 기쁨을 삼고 바둑은 다투지 않음으로써 이김을 삼으며 젓대는 구멍 없음이 좋다 하고 거문 고는 줄 없음을 높다 하며 모임은 기약 없음으로써 참되고 손은 마중과 배웅 없음으로써 편 하다 한다. 만약 한번 번문욕례(繁文縟禮)에 사로잡히면 문득 진세고해(塵世苦海)에 떨어지 리라.
幽人淸事 總在自適 故 酒以不勸爲歡 棋以不爭爲勝 笛以無腔爲適 琴以無鉉爲高 會以不期約爲 眞率 客以不迎送爲坦夷 若一牽文泥迹 便落塵世苦海矣
유인청사 총재자적 고 주이불권위환 기이부쟁위승 적이무강위적 금이무현위고 회이불기약위 진솔 객이불영송위탄이 약일견문니적 변낙진세고해의
번문욕례(繁文縟禮)는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을 말한다.
60
높은 데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지고 흐름에 임하면 사람의 뜻이 멀어지며 눈 비 오는 밤에 책을 읽으면 사람의 정신이 맑아지고 언덕에 올라 긴 휘파람을 하면 사람의 흥이 높아 진다.
登高 使人心曠 臨流 使人意遠 讀書於雨雪之夜 使人神淸 舒嘯於丘阜之賞 使人興邁
등고 사인심광 임류 사인의원 독서어우설지야 사인신청 서소어구부지전 사인흥매
마음 답답하거든 높은 곳에 올라서 탁 터진 안계(眼界)를 보라. 강기슭에 나아가 바다로 흘 러가는 물길을 보라. 눈 비 오는 밤에 홀로 앉아 책을 읽으면 밝아지는 정신! 언덕에 올라 서 긴 휘파람 하면 솟아 오르는 흥(興)! 높은 산의 꼭대기에 올라 산, 산을 보았다. 다리 위에 서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을 한 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눈 비 오는 밤엔 홀로 책을 읽었다. 언덕에 올라 휘파람도 해보고 야호 소 리도 질러 보았다. 그런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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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반만 핀 것을 보고 술은 조금 취하도록 마시면 이 가운데 무한한 가취(佳趣)가 있다.
花看半開 酒飮微 此中 大有佳趣
화간반개 주음미훈 차중 대유가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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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아주 좋은 것으로만 구하지 않으면 차 주전자가 항상 마르지 않을 것이요, 술도 훌륭 한 것만 찾지 않는다면 술독이 비지 않으리라.
茶不求精而壺亦不燥 酒不求冽而樽亦不空
다불구정이호역부조 주불구례이준역불공
차가울 렬, 맑을 례. 차 다. 속음 차.
아주 좋은 차(茶)를 구하다 못해 차전자(茶煎子)에 먼지를 앉히기보다는 슴슴한 보통 차라 도 항상 끓이는 것이 더 낳으며 훌륭한 술을 찾다 못해 술독을 비워 두기보다는 박주(薄酒) 라도 담아 두고 때때로 기울이는 맛이 더 나을 것이다.
도심편(道心篇)
7
의기( 器)는 달리 유좌(宥坐)의 기(器)라고도 한다. 속이 비면 기울어지고 물을 반쯤 담으 면 똑바로 서며 가득 담으면 넘어져서 쏟아지는 그릇이라 한다. 그러므로, 옛날엔 군자의 좌 우에 두어 권계(勸戒)의 상징으로 삼았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유좌(宥坐)의 기(器)는 허(虛)하면 기울어지고 넣으면 바르고 가득 차면 엎어진다. 명군(明君)은 이로써 지계(至戒) 를 삼나니 그러므로 항상 이것을 좌측(左側)에 둔다"라고 하고 있다.
29
욕심이 날뛰는 병은 가히 고칠 수 있으나 이론에 집착하는 병은 고치기 어려우며, 사물의 장해(障害)는 가히 없앨 수 있으나 의리에 얽매인 장해(障害)는 없애기 어렵다.
縱欲之病 可醫 而執理之病 難醫 事物之障 可除 而義理之障 難除
종욕지병 가의 이집리지병 난의 사물지장 가제 이의리지장 난제
30
전제(筌蹄)는 고기 잡는 소쿠리와 토끼 잡는 덫이니 <장자(莊子)>에 "득어망전(得魚忘筌) 득토망제(得兎亡蹄) 득의망언(得意亡言)"이란 말이 있다.
34
능함이 많은 것은 무능함의 천진(天眞)보다 못한 것을.
多能 不若無能之全眞
다능 불약무능지전진
이 나이가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은, 좀더 소탈해 졌음 싶고, 내가 짓는 미소 속에 비록 수많 은 신산(辛酸)이 풍겨나도 고소(苦笑)가 아닌 인정 있는 미소(微笑)를 지을 수 있었음 하는 것이다.
35
만물이 하나도 저 자신이 없는 것이 공(空)이요, 저 자신이 없는 것들이지만 인연으로 뭉쳐 서 뚜렷이 존재하는 것이 색(色)이다.
자연과학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자신(自身)이 없는 것들이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 해 존재(存在)하게끔 되는 것인데, 그것을 색(色)이라 이름한다"와 같이 될 것이다.
45
일에 익숙해져 감이 어찌 일을 줄이는 한가로움만 하겠는가.
練事 何如省事閒
련사 하여생사한
살필 성, 덜 생.
47
이거야말로 옛사람이 이른바 "깨닫고 보면 깨닫기 전과 같다"는 말과 같은 소식이다. 기괴 (奇怪)한 행동을 하고 난해(難解)한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참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가 없다. 54 마음 기틀 흔들리면 '활 그림자가 뱀으로 보이고', '누운 바위를 보고 범이라 하나니' 이는 모두 살기(殺氣)요, 생각이 편하면 '석호(石虎)도 가히 해구(海鷗)로 삼을 수 있고', '개구리 소리로 고취(高趣)를 당할 수 있나니' 보고 듣는 것이 모두 다 참기틀이 된다.
참으로 그렇다. 이제 마음이 흔들리다 보니, 헛 것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 길을 가는 사람의 얼굴이 피하는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헛 인기척을 느끼게 되었 다. 그래서 드디어 운전에 위험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그만 속도를 줄이게 되었다.
68
진공(眞空)은 공(空)이 아니니 형상(形相)에 집착함은 진실이 아니요, 형상을 공무(空無)라 함도 진실이 아니다.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속세에 있거나 출가해 있거나 욕망에 끌리는 것 이 괴로움이요, 그 욕망을 끊어버림도 또한 괴로움이라" 하셨다.
在世出世 拘欲 是苦 絶欲 亦是苦
재세출세 구욕 시고 절욕 역시고
불교에 '진공(眞空)'과 '묘유(妙有)'란 말이 있다. 진공은 과학에서 말하는 진공과는 뜻이 다 르니 없는 것 같으면서 실상 그 속에 있음[有]을 가진 것을 말한다. 묘유(妙有)는 그를 뒤집 어서 있는 것 같으면서 실상은 없는 것을 말한다. 이 이치를 <반야경(般若經)>에는 "색즉시 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였다. '색(色)'은 형터리를 가지고 나타난 현상이니 바꿔 말하면 일체만물(一切萬物)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인연(因緣)으로 화합되 어 잠시 뭉쳐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색즉시공(色卽是空) 이라 한다. 그러나, 비록 실체가 없이 인연으로 뭉쳐져셔 나타났다 할지라도 현재 눈앞에 나 타나 있는 이상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한다. 그러므 로,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것 이것을 진공(眞空)이라 하나니, 진공을 공(空)이 아니라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따라서 형상(形相)에 집착(執着)하여 이것이 실체다라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형상이 실체가 없다해서 일체를 공무(空無)라고 생각하는 것 [破相]도 진리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제상(諸相)이 비상(非相)임을 봐도 틀리고 제상이 실 상(實相)이라고 해도 맞지 않는단 말이다.
석가 세존은 어떻게 말씀하셨던가. 세간에 있거나 세간을 떠나 있거나 인욕(人慾)을 따 르는 것도 고통이요, 인욕을 끊는 것도 고통이라 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유무(有無)가 둘 아 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짊어지고 태어난다는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세상 살이는 이래저래 오직 고통이라는 불교의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선 생물학 적으로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모순, 진화, 전략,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여 인 욕(人慾)을 따르고 끊는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 봐야 하겠다.
70
이젯 사람들은 오로지 무념(無念)을 찾건만 마침내 얻지 못하나니, 다만 앞의 생각을 머무르지 말고 뒷생각을 기다리지 않아 현재의 연(緣)에 따라 타개하면 자연히 차츰 무(無)로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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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태어나기 전을 생각해 보라. 어떠한 모습이었을꼬. 또 이미 죽은 뒤를 생각하라. 무 슨 꼴이 될 것인가.
試思未生之前 有何象貌 叉思旣死之後 作何景色
시사미생지전 유하상모 차사기사지후 작하경색
유전자(遺傳子)가 영생(永生)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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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로움이 있으면 한 해로움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천하(天下)는 일 없음으로써 복(福)을 삼는다. 옛 사람의 시(詩)에 이르되 "그대에게 권하노니 봉후(封侯)의 일을 말하지 말라, 한 장수가 공(功)을 이룸에는 몇 만의 뼈다귀가 마른다" 하였고, 또 이르되 "천하 항상 만사로 하여금 평(平)하게 하면 칼이야 갑(匣) 속에서 천 년을 썩어도 아깝지 않다"고 하였다. 비록 웅심맹기(雄心猛氣) 있을지라도 모르는 결에 얼음처럼 사라지리라.
雖有雄心猛氣 不覺化爲氷霰矣
수유웅심맹기 불각화위빙산의
94
그러므로, 군자는 몸이 일하는 중일지라도 마음만은 일 밖에 벗어나야 한다.
故 君子身雖在事中 心要超事外也
고 군자신수재사중 심요초사외야
절제(節制)는 필요한 일이겠지만, 지나치게 되면 초자아(Super Ego)와 자아(Ego)의 양분(兩 分)에 의해 고통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회의적으로 되기 쉬울 것이요, 만족감이나 보람을 얻기 어렵게 될 것이요, 단순히 기뻐하거나 슬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시는 방 법으로 초자아(超自我)를 견제(牽制)하고 있다.
97
불교의 수연(隨緣) 유교의 소위(素位), 이 넉자는 바다를 건너는 부낭(浮囊)이다.
불교에서는 '수연(隨緣)'이라 하여 이 세상일의 모두가 인연에 의하여 생긴다고 말한다. 빈부 (貧富)와 귀천(貴賤)도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의 처신도 그 인연을 따라서 하는 것이 좋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유교에서는 '소위 (素位)'란 말이 있으니 <예기(禮記)>에 "군자(君子)는그 위(位)에 소(素)하여 그 외(外)를 넘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불가의 '수연(隨緣)'이라든가 유가의 '소위(素位)' 두 가지는 이 세상 건너는데 필요한 부낭(浮囊)과 같다. 요컨대 자기의 분(分)에 맞추고 편안하여 그 위치 를 거슬리지 않으며 그 경우에 따라 안전히 하면 가는 곳마다 자득자족(自得自足)의 자리가 될 것이다.
누가 제 분수를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능력은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것을! 다만 인 연이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여 갈 뿐인 것을! "불변하는 이(理)", 그런 것을 너무 좋아하지 말 일이다. 불변하는 진리가 있다면, 그건 오히려 "세상은 변한다"는 것이 아니겠 는가. 세상은 변해 왔고, 변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변해 갈 것이다. 그리고 예측 같은 것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그 이유에 대해 "생명(生命)이 자체로 모순(矛 盾)을 내포(內包)하고 있기 때문에 예측(豫測)이 불가능(不可能)한 것"이라고 명쾌하게 말해 주었다.
수성편(修省篇)
1
도덕을 지키는 이는 한때만 적막하지만, 권세에 붙좇는 이는 만고(萬古)에 처량하다. 달인 (達人)은 '나타나도 변하는 사물 뒤에 숨어서 불변하는 이(理)'를 보는지라, 살아 있는 몸보 다도 '죽은 뒤의 이름'을 생각하니 차라리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의 처량을 취하지 말라.
2
귀 가운데 항상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마음 속에 항상 마음에 거리끼는 일을 지니면 이 는 곧 덕행(德行)을 담아 빛내는 숫돌이 되리라. 만약 말마다 귀에 즐겁고 일마다 마음에 흡 족하면 이는 곧 제 목숨을 비틀어서 짐독( 毒) 속에 던짐과 같으리라.
耳中常聞逆耳之言 心中常有拂心之事 裳是進德修行的砥石
이중상문역이지언 심중상유불심지사 재시진덕수행적지석
겨우 재, 조금 재. 짐독( 毒)이란 짐( )이란 새가 가지고 있는 독이란 말이니 전설(傳說)에 의하면 그 새 의 날개가 한번 술잔을 스치기만 하여도 그 술을 마시면 즉사(卽死)한다고 한다.
8
일마다 하나의 넉넉함이 있어 다하지 않은 뜻을 남기면 조물(造物)이 나를 미워하지 못할 것이요, 귀신도 나를 해하지 못하리라. 만약 일은 반드시 가득함을 구하고 공(功)도 반드시 가득함을 구한다면, 안으로부터 변란(變亂)이 일거나 바깥으로부터 근심을 부르리라.
若業必求滿 功必求盈者 不生內變 必召外憂
약업필구만 공필구영자 불생내변 필소외우
찰 영. 일이며 공이고 완전을 구한다면 내변이나 외우가 생기기 쉽다. 모든 일이 가득 차면 넘치고 넘치면 기우는 것이 정해진 이치이다.
최선(最善)을 다하라(Do your best)는 말이 있지만, 그 말도 최선은 아니라는 말인가 보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기울이는 정성과 노력, 그리고 집중이 결국 인간관계에 균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중에 생기는 과욕(過慾)이 문제가 될 수 도 있을 것이고, 자신은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남들이 그렇지 못해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생 기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13
부귀한 집은 너그럽고 후(厚)하여야 하거늘 도리어 각박함은 곧 부귀하면서 그 행실을 가 난하고 천하게 함이니 어찌 능히 복을 받으리오. 총명한 사람은 거두고 감춰야 하거늘 도리 어 자랑함은 곧 총명하면서도 그 병이 어둡고 어리석음에 있나니 어찌 패(敗)하지 않으리오.
富貴之家 宜寬厚 而反忌刻 是 富貴而貧賤其行矣 如何能亨 聰明人 宜 藏 而反炫耀 是 聰明 而愚 其病矣 如何不敗
부귀지가 의관후 이반기각 시 부귀이빈천기행의 여하능형 총명인 의검장 이반현요 시 총명 이우몽기병의 여하불패
어두울 몽, 어리석을 몽. 빛날 요(耀). 요(曜)와 동자(仝字).
넉넉한 사람은 마땅히 너그러워야 할 터인데 도리어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각박하게 구는 것 을 흔히 본다. 이는 그가 부귀하면서도 행실은 빈천(貧賤)한 자와 같이 함이니 어찌 복을 받 을 수 있겠는가. 똑똑한 사람일수록 그 재주를 거두고 감춰야 하는 법이어늘 오히려 어리석 은 자보다 더 드러내어 설침을 본다. 이는 총명하면서도 그 병이 어리석은 데 있으니 어찌 실패하지 않겠는가.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란 말이 늘 좋다. 그러나 베푸는 자를 만나면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며 받아 먹을 대로 먹고는 입을 씻고 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도 흔히 본다. 그렇게 되면 가랑비에 바지 가랑이만 적시게 되고 말 것이다. 베푸는 일에도 지혜는 필요한 모양이다. 그냥 같이 어울려 담소하고 음식을 먹는 것이 즐거웠는데 남은 그럴 기회 를 마련해 주지 않았으므로, 내가 벌여 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19
마음이 농후(濃厚)한 사람은 스스로를 후대(厚待)할 뿐 아니라 남도 또한 후대하는지라 곳 곳마다 짙으며, 마음이 담박(淡泊)한 사람은 스스로를 박대(薄待)하고 남도 또한 박대하는지 라 일마다 묽다. 군자는 평상의 기호(嗜好)를 너무 농염(濃艶)하게 해서도 못 쓰며 또한 너 무 고적(枯寂)하게 하여도 못 쓴다.
念頭濃者 自對厚 對人亦厚 處處皆濃 念頭淡者 自對薄 對人亦薄 事事皆淡 故 君子 居常嗜好 不可太濃艶 亦不宜太枯寂
염두농자 자대후 대인역후 처처개농 염두담자 자대박 대인역박 사사개담 고 군자 거상기호 불가태농염 역불의태고적
20
그가 금전으로써 나를 대하면 나는 인격으로써 대할 것이요 그가 지위로써 나를 대하면 나 는 의리로써 대할 것이라.
가진 것이라곤 늘 인격, 의리밖에 없었다. 금전이니 지위는 도무지 가져 본 적이 없었다. ^^
23
착한 사람은 몸가짐이 안상(安詳)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잠자는 동안의 신혼(神魂)조차 화기(和氣) 아님이 없으되, 몹쓸 사람은 행동이 사나울 뿐 아니라 목소리부터 웃으며 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모두 살기(殺氣) 아님이 없다.
'다 같은 물을 마시되 소는 마시면 우유가 되고 배암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이 불경(佛 經)에 있다.
25
복(福)은 일 적음보다 더 복됨이 없고 재앙(災殃)은 마음 많음보다 더 재앙이 없나니, 일에 괴로운 사람만이 일 적음의 복됨을 알 것이요, 마음 편한 사람만이 마음 많음의 재앙임을 알 것이다.
福莫福於少事 禍莫禍於多心 唯苦事者 方知少事之爲福 唯平心者 始知多心之爲禍
복막복어소사 화막화어다심 유고사자 방지소사지위복 유평심자 시지다심지위화
부질없는 일을 많이 만들지 말라. 일 적은 복보다 더 큰 복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 시끄러운 일을 많이 장만하지 말라. 마음 시끄러운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없는 까닭이다.
평심(平心)? 기복(起伏)이 없는 마음? 파동(波動)하는 마음? 일에 치인 사람, 마음이 번거로운 사람은 내공(內功)이 높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번거로우면 재앙(災殃)이 닥친다?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웬지 수긍(首肯)이 가 는 좋은 말이다. 마음이 흩어지면 내공(內功)이 낮아져, 만화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에너지로 된 방어벽(Energy Shield)이 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약해진 방어벽의 어디로 어떤 상대 가 어떻게 공격해 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승률은 이미 낮아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 번거로운 상태란 것은 신체의 면역력(免疫力)이 약화되어 있는 상태와 같은 것이다. 깨어진 에너지 쉴드로 들어오는 것은 마음이다. 남의 마음이다. 그것은 인간관계를 말한다. 그러므 로 에너지 쉴드란 것은 정확하게 말해 인간관계 쉴드인 것이다. 수호천사가 막아주고 있는 것도 실은 인간관계인 것이고 남의 마음인 것이다.
27
호사(豪奢)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도 항상 모자란다. 어찌 검소(儉素)한 이의 가난해도 항상 남음이 있음만 하랴. 능(能)한 사람은 노고(勞苦)하여 남의 원한만 산다. 어찌 졸(拙)한 사람 의 안일(安逸)하면서 천진(天眞)을 지킴만 하랴.
奢者 富而不足 何如儉者 貧而有餘 能者 勞而府怨 何如拙者 逸而全眞.
사자 부이부족 하여검자 빈이유여 능자 노이부원 하여졸자 일이전진.
28
서책(書冊)을 읽어 성현(聖賢)을 보지 못하면 한갓 지필(紙筆)의 종이 될 것이요, 벼슬자리 에 앉아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만 의관(衣冠)의 도적이 될 것이며, 학문을 가르치되 실 천궁행(實踐躬行)하지 않으면 구두(口頭)의 선(禪)이 될 것이요, 큰 사업을 세워도 은덕(恩 德)을 심을 것을 생각지 않으면 이는 눈앞에 한 때의 꽃이 되고 말 것이다.
讀書 不見聖賢 爲鉛 傭 居官 不愛子民 爲衣冠盜 講學 不尙躬行 爲口頭禪 入業 不思種德 爲 眼前花
독서 불견성현 위연참용 거관 불애자민 위의관도 강학 불상궁행 위구두선 입업 불사종덕 위 안전화
분판, 글씨를 쓰는 널조각 참.
학문을 하는 이는 실천궁행해야 하는가?
31
선비가 다행히 세상에 두각이 나타나 등 다습고 배부르되 좋은 말과 좋은 일 행하기를 생각 하지 않으면, 비록 이 세상에 백 년을 살아도 마치 하루도 살지 않음과 같으리라.
士君子 幸列頭角 復遇溫飽 不思立好言行好事 雖是在世百年 恰似未生一日
사군자 행렬두각 부우온포 불사립호언행호사 수시재세백년 흡사미생일일
Elite나 지도자일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
32
명성을 얻으려 함은 바로 탐욕이 있는 까닭이다. 참으로 큰 재주는 별달리 교묘한 재주가 없나니 묘한 재주를 부리는 것은 곧 졸렬한 까닭이다.
立名者 正所以爲貪 大巧無巧術 用術者 巧所以爲拙
입명자 정소이위탐 대교무교술 용술자 교소이위졸
36
악한 일을 행한 다음 남이 아는 것을 두려워함은 아직 그 악 가운데 선을 향하는 길이 있음 이요, 선(善)을 행하고 나서 남이 빨리 알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 선 속에 악의 뿌리가 있 는 까닭이다.
爲惡而畏人知 惡中猶有善路 爲善而急人知 善處卽是惡根
위악이외인지 악중유유선로 위선이급인지 선처즉시악근
38
성질이 조급(躁急)한 사람은 타는 불과 같아서 보는 것마다 태워 버리게 되고, 남에게 은혜 베풀기를 즐기지 않는 이는 얼음과 같이 차서 닥치는 것마다 얼려 죽이며, 기질이 따분하고 고집 있는 사람은 흐르지 않는 물 썩은 나무와 같아 생기가 없다. 이들은 모두 다 공업(功 業)을 세우기 어렵고 복(福)을 길이 누리지 못하리라.
燥性者 火熾 遇物則焚 寡恩者 氷淸 逢物必殺 凝滯固執者 如死水腐木 生氣已絶 俱難建功業而 延福祉
조성자 화치 우물즉분 과은자 빙청 봉물필살 응체고집자 여사수부목 생기이절 구난건공업이 연복지
성질 급한 사람, 인색한 사람, 고집 센 사람을 위한 말이다.
39
행복(幸福)이란 마음대로 구하지 못하는 바이니 스스로 즐거운 정신을 길러 복(福)을 부르 는 바탕을 삼을 따름이요, 재앙(災殃) 또한 마음대로 피하지 못하나니 남을 해(害)하는 마음 을 없이함으로써 재앙을 멀리하는 방도로 삼을 따름이니라.
40
천지(天地)의 기운은 따뜻하면 낳아서 기르고 차가우면 시들어 죽게한다. 그러므로, 성질이 맑고 차가운 사람은 받아서 누리는 것도 또한 박(薄)할 것이니, 오직 화기(和氣) 있고 마음 이 따뜻한 사람이라야 그 복(福)이 두터우며 그 은택(恩澤)이 또한 오래 가는 것이다.
天地之氣暖則生 寒則殺 故 性氣淸冷者 受享 亦凉薄 唯和氣熱心之人 其福亦厚 其澤亦長
천지지기난즉생 한즉살 고 성기청랭자 수향 역량박 유화기열심지인 기복역후 기택역장
46
기상(氣象)은 높고 넓어야 하나 소홀해서는 안 되고, 심사(心思)는 빈틈이 없어야 하되 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취미(趣味)는 담박(淡泊)한 것이 좋으나 고조(枯燥)에 치우쳐서는 안 되 고, 지조(志操)를 지킴에는 엄정(嚴正)해야 하지만 과격(過激)해서는 안 된다.
47
청백하면서 너그럽고 어질면서 결단을 잘 하며 총명하면서 지나치게 살피지 않고 강직하면 서 너무 바른 것에 치우침이 없으면, 이를 꿀 발라도 달지 않고 바다 물건이라고 짜지 않음 과 같다 하리니 곧 아름다운 덕이 된다.
淸能有容 仁能善斷 明不傷察 直不過矯 是謂密餞不甛 海味不鹹 裳是懿德.
청능유용 인능선단 명불상찰 직불과교 시위밀전불첨 해미불함 재시의덕.
전송할 전, 또는 그 음식. 짤 함. 조금, 겨우 재. 아름다울 의.
48
가난한 집도 깨끗이 소제(掃除)하고 가난한 집 여자라도 깨끗이 머리를 빗으면, 비록 경색 (景色)이 미려(美麗)하지 못할지라도 기품(氣品)이 절로 풍아(風雅)하리로다.
貧家淨拂地 貧女淨梳頭 景色雖不艶麗 氣度自是風雅
빈가정불지 빈녀정소두 경색수불염려 기도자시풍아
빗 소, 빗을 소. 기도는 기량(氣量). 기량은 기상(氣象)과 도량(度量).
50
한 생각이 문득 일어나 사욕(私慾)의 길로 향해 감을 깨닫거든 곧 이끌어 도리(道理)의 길 로 좇아 오도록 하라. 일어나매 이내 깨닫고 깨달으매 이내 돌리면, 이는 곧 재앙을 돌려서 복을 삼고 죽음에서 일으켜 삶으로 돌리는 관두(關頭)가 된다. 진실로 안이(安易)하게 방심 (放心)하지 말라.
관두(關頭)란 가장 중요한 지경, 고비를 이른다.
51
버리기로 했거든 다시 그 일에 의심(疑心)을 두지 말라. 의심에 거리끼면 이미 버리겠다던 그 마음에 부끄럼이 많으리라. 사람에게 무엇을 베풀었거든 그 갚음을 재촉하지 말라. 그 갚 음을 재촉하면 앞에 베푼 바 그 마음도 아울러 잘못이 되리로다.
舍己 毋處其疑 處其疑 卽所舍之志多愧矣 施人 毋責其報 責其報 倂所施之心 但非矣
사기 무처기의 처기의 즉소사지지다괴의 시인 무책기보 책기보 병소시지심 단비의
좋은 일인 줄 깨닫고 헌신적으로 그 일을 했거든 그 일이 자기에게 이로우냐 불리하냐를 다 시 회의(懷疑)하지 말라. 의심하고 주저하면 자기의 이익을 불계(不計)하고 헌신적으로 나섰 던 그 첫 뜻이 부끄럽지 않으냐. 남을 위하여 무슨 좋은 일을 베풀었거든 나중에 그 사람이 그 은덕(恩德)을 갚지 않는다고 꾸짖거나 원망하지 말라. 그 갚음을 바라게 되면 그 사람을 위하여 베푼 마음이 애당초 잘못이 아니겠느냐.
바둑을 둘 때의 마음 가짐도 이러하다. '돌의 체면'이라고도 한다. 버리기로 했거나 주기로 했다면 다시 돌아 보지 말아야 한다. 가진 바 '첫 마음'을 소중히 하여 그 다음 마음이나 생 각도 그 '첫 마음'과 계속 일관(一貫)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52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薄)하게 준다면 나는 나의 덕(德)을 두텁게 함으로써 이를 맞을 것 이요, 하늘이 나의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나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함으로써 이를 도울 것이 며, 하늘이 나에게 곤궁(困窮)한 길을 준다면 나는 나의 도(道)를 형통(亨通)케 함으로써 그 길을 열 것이니, 이와 같으면 하늘인들 또 나를 어찌하랴.
하느님이 인간과 협상한 적이 있었던가? 평생 불운(不運)과 곤궁(困窮)을 면치 못한 끝에 '인생실난 사여지하(人生實難 死如之何)'라고 탄식한 도연명(陶淵明)의 싯귀가 오히려 진솔하 지 않은가? 불운하고 곤궁하다 하여 수원수구(誰怨誰咎)하겠는가? 비낄 방법이 있기라도 한 듯한 말이 오히려 마음에 차지 않는다. 덕을 두텁게 하지 않아서, 마음을 편케 하지 않아서, 도를 형통케 하지 못했음으로 하여, 불운과 곤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면, 얼마나 가슴을 칠 사람이 많겠는가? 도대체 부귀와 영화를 누린 이 치고 덕이 두텁고 마음이 편했고 도가 형 통한 이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복이니 부귀니 영화니 하는 것은 덕이며 마음이며 도와 거리가 먼 것임을 일찌감치부터 깨달을 일이었다.
54
기녀(妓女)라도 늙으막에 양인(良人)을 좇으면 '한 세상 분 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없 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하였으니 참으로 명언(名言) 이다.
젊은 날에 행한 수 많은 선업(善業)이 설마하니 늙어 저지르는 악행(惡行)으로 다 지워지기 야 할까. 마찬가지로 젊은 날 저지른 수 많은 악행이 늙은 날의 참회로 어찌 다 지워질까 보냐. 그러나 인간의 기억이 뒷 것만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음을 어찌 부인하랴.
59
'성(城)이 무너졌다'는 것은 기양(杞梁)의 처(妻)의 고사이니 고금주(古今注)에 "기양(杞梁)이 전사(戰死)하니 그 처 탄(嘆)하여 가로되 위로 어버이 없고 가운데 지아비 없고 아래로 자 손 없으니 산 사람의 고경(苦境)이 극에 이르렀다 하고 방성장곡(放聲長哭)하니 그 울음 소 리에 감동되어 도성(都城)이 저절로 무너지다. 기양(杞梁)의 처는 드디어 물에 투신하여 죽 으니 그 매(妹)가 그 저(姐)의 정조(貞操)를 슬퍼하여 이에 노래를 짓고 노래 이름을 기양처 (杞梁妻)라 하다"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60
문장을 공부하여 그 구극(究極)에 이르면 별다른 기(奇)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알맞을 뿐이다.
文章 做到極處 無有他奇 只是恰好
문장 주도극처 무유타기 지시흡호
62
남의 조그만 허물을 꾸짖지 않고, 남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으며, 남의 지난날 잘못을 생각지 말라. 이 세 가지는 가히 써 덕(德)을 기를지며 또한 해(害)를 멀리할 것이다.
不責人小過 不發人陰私 不念人舊惡 三者 可以養德 亦可以遠害
불책인소과 불발인음사 불념인구악 삼자 가이양덕 역가이원해
빈대를 잡느라 초가삼칸을 태우지 말 것이며 쥐를 잡느라 장독을 깨지 말 일이다. 또한 외 로운 자의 밭을 뺏지 말 일이다.
66
새로이 지우(知友)를 만드는 것은 옛 친구와의 정을 두터이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結新知不如敦舊好
결신지불여돈구호
68
진기한 것을 경탄(敬歎)하고 이상한 것을 즐기는 자는 원대한 식견(識見)이 없으며, 괴로운 절개(節槪)를 지키고 세상과 맞서서 홀로 행함은 영구한 지조(志操)가 아니다.
驚奇喜異者 無遠大之識 苦節獨行者 非恒久之操
경기희이자 무원대지식 고절독행자 비항구지조
항구 항, 항상 항.
무엇이 내세울만 할 것인가? 무엇을 영구한 지조라 이를 것인가? 세월이 흐르면 허다한 사 건들은 세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 것이며, 인류의 사상 통일은 기다리면 과연 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많은 것들이 저 홀로의 고독한 꿈이며 고집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70
사정(私情)을 이기고 욕념(欲念)을 억제함에는 그것이 무엇임을 빨리 알지 않으면 누르는 힘이 쉽지 않다고 하는 이도 있고, 아무리 알았다 해도 참는 힘이 모자란다고 하는 이도 있 으니, 대개 지식(智識)은 악마를 조파(照破)하는 한 알 명주(明珠)요, 의지(意志)는 심마(心 魔)를 참살(斬殺)하는 한 자루 혜검(慧劍)이라, 두 가지 다 없지 못할 것이라.
71
사람을 괴롭히는 역경(逆境)은 호걸(豪傑)을 단련(鍛鍊)하는 하나의 도가니와 망치로다. 능 히 그 단련을 받아 내면 몸과 마음이 함께 이로울 것이나, 그 단련을 못 이겨 내면 몸과 마 음이 함께 해(害)를 보리라.
하늘이 큰 일 맡길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몸을 수고롭게 하고 배를 굶주리게 한다는 말이 있 다. 또 사람은 어지러움을 겪지 않으면 지혜가 밝아지지 않는다든가, 영웅이 곤궁(困窮)한 속에서 나온다는 말은 그 근본된 뜻이 같은 것이다. 재난과 역경이 사람을 단련하여 대성시 킨다는 말이다. 만일 이러한 단련을 받지 못하면 몸이 어려움을 감당(堪當)하지 못할 것이 요, 마음과 지모사려(智謀思慮)가 다 대임(大任)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는 곤 궁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또한 남 앞에 짐짓 늘어놓지 않는다.
묵묵힌 견딘다. 그러나 괴롭다고 신음한들 또 어떠랴.
72
청천백일(靑天白日)같은 빛나는 절의(節義)도 본래는 어두운 방 한편 구석에서 길러 온 것 이요, 건곤(乾坤)을 휘두르는 뛰어난 경륜(經綸)도 실상은 깊은 못에 들듯이 살얼음 밟듯이 조심스레 마련한 재주다.
靑天白日的節義 自暗室屋漏中培來 旋乾轉坤的經綸 自臨深履薄處操出
청천백일적절의 자암실옥루중배래 선건전곤적경륜 자임심리박처조출
청천백일(靑天白日), 추상열일(秋霜烈日) 같은 행동은 겉으로는 폭발적이나 그들의 가슴 속 에서는 몇 십 년을 두고 길러 온 싹이 아니던가. 웅대한 포부도 그렇다. 물가에 가듯이 살얼 음 밟듯이 조심스러운 마음, 치밀한 관찰, 명석한 판단이 그 바탕이 되어 있다. '임심리박(臨 深履薄)'은 시경(詩經)의 '전전긍긍(戰戰兢兢) 여임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에서 온 것이다.
77
저를 반성하는 이는 닥치는 일마다 이(利)로운 약석(藥石)을 이루거니와 남을 허물하는 이 는 생각이 움직일 때마다 스스로를 해(害)하는 창과 칼이 된다.
反己者 觸事 皆成藥石 尤人者 動念 卽是戈矛
반기자 촉사 개성약석 우인자 동념 즉시과모
탓할 우, 허물 우. 창 과. 창 모. 가지가 있는 창은 과. 가지가 없는 창은 모.
항상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은 매사에 큰 공부가 된다. 허물을 자기에게 돌려 뉘우치고 바로 잡으면 어찌 모든 것이 저를 위한 약(藥)이 되지 않으리오.
84
생각이 너그럽고 두터운 사람은 봄바람이 만물을 따뜻하게 기르는 것과 같으니 모든 것이 이를 만나면 살아난다. 생각이 각박하고 냉혹한 사람은 삭북(朔北)의 한설(寒雪)이 모든 것 을 얼게 함과 같아서 만물이 이를 만나면 곧 죽게 된다.
念頭寬厚的 如春風煦育 萬物遭之而生 念頭忌刻的 如朔雪陰凝 萬物遭之而死
염두관후적 여춘풍후육 만물조지이생 염두기각적 여삭설음응 만물조지이사
따뜻하게 할 후. 얼 응.
86
남의 허물은 마땅히 용서할 것이로되 자기의 허물은 용서하지 못할 것이요, 나의 곤욕은 마 땅히 참을 것이로되 남의 곤욕(困辱)은 참지 못할지니라.
人之過誤 宜恕 而在己則不可恕 己之困辱 當忍 而在人則不可忍
인지과오 의서 이재기즉불가서 기지곤욕 당인 이재인즉불가인
즉(則)은 곧 즉, 법칙 칙. 앞의 말을 받아 뭐뭐 할 경우에는 의 뜻으로 쓰임. 즉(卽)은 곧 즉. 바로, 다름이 아니라의 뜻으로 쓰인다.
자신의 허물도 용서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곤욕 역시 못참겠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87
내가 귀(貴)하여 사람들이 받듦은 '높은 관(冠)과 큰 띠'를 받듦이요, 내가 천(賤)하다고 사람 들이 업신여김은 '베옷과 짚신'을 업신여김이라. 그렇다면 본디 나를 받든 것이 아니니 내 어이 기쁨을 삼으리요. 본디 나를 업신여김이 아니니 내 어찌 성내리요.
我貴而人奉之 奉此峨冠大帶也 我賤而人侮之 侮此布衣草履也 然則原非奉我 我胡爲喜 原非侮 我 我胡爲怒.
아귀이인봉지 봉차아관대대야 아천이인모지 모차포의초리야 연즉원비봉아 아호위희 원비모 아 아호위노.
높을 아.
92
듣기 싫은 소릴 하고 욕하는 사람은 조각구름이 햇빛을 가리움과 같으니 오래지 않아 절로 밝아진다. 아양 떨고 아첨하는 사람은 틈바람이 살결을 스며듦과 같아 그 손(損)을 깨닫기가 어렵다.
93
산이 높고 험한 곳은 나무가 없으나 골짜기 감도는 곳엔 초목이 총생(叢生)한다. 물살이 급 한 곳은 고기가 없건마는 못물이 고이면 어별(魚鼈)이 모여든다. 이로써 보면 너무 고상한 행동과 급격한 마음이란 군자가 깊이 경계할 바이다.
山之高峻處 無木 而谿谷廻環則草木 叢生 水之湍急處無魚 而淵潭停蓄則魚鼈 聚集 此高絶之行 急之衷 君子重有戒焉.
산지고준처 무목 이계곡회환즉초목 총생 수지단급처무어 이연담정축즉어별 취집 차고절지행 편급지충 군자중유계언.
여울 단. 물이 빨리 흐르는 곳. 좁을 편. 속옷 충. 마음 충.
절개(節槪)는 자칫하면 거만(倨慢)해지기 쉽고 강직(剛直)은 자칫하면 과격하기 쉽다. 깨끗 함을 지키면서 능히 속세를 따뜻이 교화하고 곧음을 지키면서 능히 관대함이 좋다. 산이 너 무 높고 험하면 잘 살지 못하지만 골짜기가 감돌고 포근하면 초목이 다옥히 자라지 않는가. 물도 여울이 너무 급하면 고기가 적지만 깊은 못물에 어별(魚鼈)이 살지 않는가. 그러므로, 군자는 너무 고고(孤高)한 행동과 과격(過激)한 감정을 경계한다.
96
매는 서는 것이 조는 것 같고 범의 걸음은 병든 것 같으니 바로 이것이 저가 사람을 움켜 잡고 사람을 무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총명을 나타내지 말며 재주 빛남을 뚜렷이 하 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이 큰 일을 두 어깨에 메일 역량(力量)이 된다.
故 君子 要聰明不露 才華不逞
고 군자 요총명불로 재화불령
왕성할 령, 다할 령.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 했음인가? 시기와 질투인가? Hidden Card의 세계가 있는 것이고 Open Card의 세계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Open Mind의 개방된 태도와 예측 가능한 품행 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능력을 뽐내어 남에게 시기심과 경계 감을 갖게 하는 것과는 분명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97
뜻대로 안 되는 일을 근심하지 말며, 마음에 쾌한 일을 기뻐하지 말라. 오랫동안 무사함을 믿지 말며, 처음 맞는 어려움을 꺼리지 말라.
근심하고 또 기뻐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라 목석(木石)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지 나치게 집착하지 말란 말일 것이다. 세상일은 끊임없이 변해 간다는 것이 요체(要諦)가 아니 겠는가. 변화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두려워 해서 될 일이겠는가.
100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자는 한 가지 일도 이룰 수 없거니와, 마음이 화평(和平)하고 기상이 평순(平順)한 이는 백복(百福)이 절로 모이게 된다.
性燥心粗者 一事無成 心和氣平者 百福自集
성조심조자 일사무성 심화기평자 백복자집
단 한 가지만을 이루겠다는 자의 마음이 화평하고 기상이 평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와신 상담(臥薪嘗膽)하는 자는 마음도 몸도 모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루고자 하는 한 가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인생을 시속 100km로 달려야 상궤(常軌)를 벗어나 가고 싶은 길 로 갈 수 있었다. 마음을 화평하게 가졌다면 구태(舊態)와 습속(習俗)이 갖는 인력(引力)으 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103
바쁠 때 자기의 성정(性情)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한가한 때에 심신(心神)을 맑 게 기를 것이요, 죽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생시(生時)에 사물의 진상(眞 相)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104
엎드림이 오랜 새는 나는 것이 반드시 높고, 먼저 핀 꽃은 지는 것도 또한 빠르다.
伏久者飛必高 開先者謝獨早
복구자비필고 개선자사독조
물러날 사, 시들 사, 사례할 사.
엎드려 있기를 오래한 매나 독수리 같은 새는 그 동안에 힘을 충분히 길렀기 때문에 날면 반드시 높이 날고, 일찍이 핀 꽃은 지기도 남 먼저 한다. 이 이치를 알면 불우하다는 한탄과 초조한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섭세편(涉世篇)
건널 섭, 거닐 섭.
1
세상 물결에 부대낌이 얕으면 그 더러움에 물듦도 또한 얕을 것이요, 세상 일을 겪음이 깊 으면 그 속임수의 재주도 또한 깊어질 것이니, 이러므로 군자는 능란(能爛)한 것이 질박(質 朴)함만 같지 못하고 곡진(曲盡)한 것이 소탈(疎脫)함만 같지 못하다.
2
군자의 마음 바탕이여, 하늘 푸르고 날빛이 흼과 같도다. 사람으로 하여금 모르게 하여서는 안 되느니. 군자의 재주여, 옥이 바위에 싸이고 구슬이 바다 속에 잠김과 같도다. 사람으로 하여금 쉬이 알게 하여서는 못 쓰느니.
君子之心事 天靑日白 不可使人不知 君子之才華 玉 珠藏 不可使人易知.
군자지심사 천청일백 불가사인부지 군자지재화 옥운주장 불가사인이지.
넣을 운, 감출 운. 그러나 한글 워드에서는 음(音)이 온으로 되어 있었다.
소인(小人)은 제 마음을 내어보이는 법이 없으면서도 옅은 재주는 남에게 자랑하려 애쓴다.
3
권세와 명리의 번화함은 가까이하지 않는 이가 깨끗하고, 가까이할지라도 물들지 않는 이가 더욱 깨끗하다. 권모와 술수는 모르는 이를 높다고 하나 알아도 쓰지 않는 이를 더욱 높다 할 것이다.
勢利紛華 不近者 爲潔 近之而不染者 爲尤潔 智械機巧 不知者爲高 知之而不用者 爲尤高.
세리분화 불근자 위결 근지이불염자 위우결 지계기교 부지자위고 지지이불용자 위우고.
더욱 우. 형틀 계, 형틀 채울 계, 기구 계, 틀 계. 기교를 베푼 장치. 슬기 지. 꾀. 기교(技巧)는 재주를 의미. 기교(機巧)는 잔꾀와 솜씨가 매우 교묘함을 의미.
6
벗을 사귐에는 모름지기 삼분(三分)의 협기(俠氣)를 띠어야 하고, 사람이 됨에는 마땅히 일 점(一點)의 본마음을 지녀야 한다.
交友 須帶三分俠氣 作人 要存一點素心
교우 수대삼분협기 작인 요존일점소심
교우(交友)에는 희생(犧牲)의 마음이 있어야 하나니 그 마음이 곧 의협심(義俠心)이다. 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다른 모든 공부가 훌륭해도 한 점의 순결한 마음(素心)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 순결의 마음만이 외계(外界)의 사물에 이름이 더럽혀지고 또 사로잡히는 것을 막아내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8
세상에 처(處)함에는 한 발자국 사양함을 높다 하나니 물러서는 것은 곧 나아갈 밑천이요, 사람을 대접함에는 일분(一分)의 너그러움을 복(福)이라 하나니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실 로 저를 이(利)하게 하는 바탕이다.
11
남의 나쁜 점 꾸짖음을 너무 엄하게 하지 말라. 그 말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야 한다. 남을 가르침에 좋은 일 들기를 너무 높은 것으로써 하지 말라. 그 사람이 들어서 행할 수 있는 것으로써 해야 한다.
攻人之惡 毋太嚴 要思其堪受 敎人以善 毋過高 當使其可從
공인지악 무태엄 요사기감수 교인이선 무과고 당사기가종
13
세상에 처함에는 반드시 공(功)만을 찾지 말라. 허물 없는 것이 곧 공(功)이로다. 사람에게 베풀되 그 덕(德)에 감동할 것을 바라지 말라. 원망 듣지 않는 것이 곧 덕(德)이로다.
處世 不必邀功 無過 便是功 與人 不求感德 無怨 便是德
처세 불필요공 무과 변시공 여인 불구감덕 무원 변시덕
구할 요, 맞이할 요. 편할 편, 소식 편, 곧 변, 문득 변, 똥오줌 변.
16
소인을 대접함에는 엄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미워하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다.
19
태평한 세상을 당하여서는 몸가짐을 마땅히 방정(方正)하게 할 것이요, 어지러운 세상을 당 하여서는 몸가짐을 원만(圓滿)하게 할 것이며 말세를 당하여서는 마땅히 방(方)과 원(圓)을 아울러 써야 하리로다. 착한 사람을 대함에는 너그럽게 하고 몹쓸 사람을 대함에는 엄하게 하며 범용(凡庸)한 사람을 대함에는 마땅히 너그러움과 엄함을 아울러 지녀야 한다.
處治世 宜方 處難世 宜圓 處叔季之世 當方圓竝用 待善人 宜寬 待惡人 宜嚴 待庸衆之人 當寬 嚴竝存
처치세 의방 처난세 의원 처숙계지세 당방원병용 대선인 의관 대악인 의엄 대용중지인 당관 엄병존
20
내가 남에게 공이 있거든 그것은 생각하지 말고 허물이 있거든 그것을 생각하라. 사람이 나 에게 은혜 있거든 그것을 잊지 말고 원망이 있거든 그것을 잊어라.
그가 내게 신세진 것은 생각하지 말되, 그에게 저지른 허물은 잊지 말라. 내가 그에게 신세 진 것은 잊지 말되, 그에게 갖고 있는 원망은 버리도록 하라.
24
열 마디 말에 아홉 마디가 맞아도 반드시 대단하다 칭찬하지는 않되, 한 마디 만이라도 어 긋나면 곧 허물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모여든다. 열 가지 계략에 아홉 가지가 성공하여도 반 드시 그 공(功)을 돌리려 하지 않으면서 한 계략만 이루지 못하면 비방(誹謗)하는 소리가 사면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군자가 침묵할지언정 떠들지 않으며 졸렬할지언정 교묘함을 보 이지 않는 까닭이다.
十語九中 未必稱奇 一語不中 則愆尤騈集 十謀九成 未必歸功 一謀不成 則 議叢興 君子 所以 寧? 無躁 寧拙 無巧
십어구중 미필칭기 일어불중 즉건우변집 십모구성 미필귀공 일모불성 즉자의총흥 군자 소이 영묵 무조 영졸 무교
허물 건. 허물 우. 나란히 할 변. 그러나 한글 워드에는 병으로 되어 있었다. 헐뜯을 자.
그만큼 칭찬 받기 어렵고 비난 받기 쉬우므로 칭찬이나 비난에 연연해 할 것 없는 것이다.
25
땅이 더러우면 초목도 많이 나되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항상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 자는 마땅히 때 묻고 더러운 것을 받아들여 품을 것이요,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홀로 행하 려는 뜻을 가지지 말 것이다.
地之穢者 多生物 水之淸者 常無魚 故 君子 當存含垢納汚之量 不可持好潔獨行之操
지지예자 다생물 수지청자 상무어 고 군자 당존함구납오지량 불가지호결독행지조
'수지청자상무어(水之淸者常無魚)'의 구(句)는 문선(文選)에 나오는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 문(答客難文)에 '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라는 글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이 너무 살피면 무리가 따르지 않는 법이다.
이런 세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아마 '자연과학자'라는 직업의 사람일 것이다.
26
아직 이루지 못한 공(功)을 꾀함은 이미 이룬 업(業)을 보전함만 같지 못하고, 지나간 허물 을 뉘우침은 다가올 잘못을 막음만 같지 못하다.
圖未就之功 不如保已成之業 悔旣往之失 不如防將來之非
도미취지공 불여보이성지업 회기왕지실 불여방장래지비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기보다는 이미 이루어 놓은 사업을 힘써 지켜 나가는 것이 낫고, 지나 간 과실을 지나치게 후회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과실을 만들어 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다.
무슨 업(業)을 이루었나? 무슨 공(功)을 꾀해야 하나? 나의 지나간 허물은 무엇인가? 다가 올 잘못은 또한 무엇일까?
28
집안 사람이 허물 있거든 마땅히 몹시 성내지 말 것이며 가볍게 버리지 말 것이니, 그 일을 말하기 어렵거든 다른 일을 빌려 은근히 교회(敎誨)하라. 오늘에 깨닫지 못하거든 내일을 기 다려 두 번 경계하라. 봄바람이 언 것을 풀듯이 화기(和氣)가 얼음을 녹이듯이 하라. 이것이 바로 가정(家庭)의 규범(規範)이니라.
家人有過 不宜暴怒 不宜輕棄 此事難言 借他事隱諷之 今日不悟 俟來日再警之 如春風解凍 如 和氣消氷 裳是家庭的型範
가인유과 불의폭노 불의경기 차사난언 차타사은풍지 금일불오 사래일재경지 여춘풍해동 여 화기소빙 재시가정적형범
기다릴 사.
집안 사람이 허물이 있으면 너무 지나치게 성내어도 안 되고 그냥 본체만체 버려 두어도 안 된다. 바로 말하기가 어렵거든 다른 일을 비유하여 깨우쳐 주되 오늘에 그 허물을 못 깨닫 거든 다음날을 기다려 다시 경각(警覺)케 하라. 봄 바람이 얼음을 녹이듯이 화기로써 하는 것이 집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일이다. '집안 사람에 허물 있거든 삼하게 화내지도 말며 가벼이 버리지도 말라.'
가장 잘 실천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일의 잘잘못을 항상 잘 따졌고 화합(和合)을 생각한 경우는 드물었다. 정답 (正答)을 맞추어야 한다는 자연과학자로서의 태도가 너무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다.
32
뜻을 굽혀서 남에게 기쁨을 얻기보다는 내 몸의 행실을 곧게 하여 남의 미움을 받음이 차라 리 나으니라.
曲意而使人喜 不若直躬而使人忌
곡의이사인희 불약직궁이사인기
몸 궁.
33
부모동기(父母同氣)의 변(變)을 당하거든 마땅히 종용(從容)할 것이요 격렬하지 마라. 붕우 교유(朋友交遊)의 과실(過失)을 보거든 마땅히 충고할 것이요 주저하지 말라.
處父兄骨肉之變 宜從容不宜激烈 遇朋友交遊之失 宜 切不宜優遊
처부형골육지변 의종용불의격렬 우붕우교유지실 의개절불의우유
종용(從容)은 조용의 원말. 낫 개. 넉넉할 우, 뛰어날 우, 부드러울 우, 구차할(머뭇거리고 결 단성이 적음) 우. 우유(優遊)는 과단성이 없는 모양.
친구라든가 평소에 사귄 사람이 과실이 있거든 성심으로 깨우쳐 줄 것이요 그냥 어물어물 넘겨 버리지 말아야 한다.
성실(誠實)과 우의(友誼)를 떠나서라도 그렇게 해야 잘잘못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을 것이 다. 잘못을 지적 당하여 바로 수긍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부인(否認)과 설득(說得)의 공 방(攻防)을 통해 우리는 시비를 가리는 눈을 보다 정확히 키우게 될 것이다.
35
천금(千金)을 주고도 일시의 환심(歡心)을 맺기 어려우나 한 그릇 밥으로도 평생의 감심(感 心)을 이루나니, 대개 사랑이 지나치면 은혜가 도리어 원수 되고, 괴로움이 지극하면 박(薄) 한 것이 도리어 기쁨이 된다.
千金 難結一時之歡 一飯 竟致終身之感
천금 난결일시지환 일반 경치종신지감
끝날 경, 마침내 경.
대금(大金)을 아낌없이 주어도 한때의 환심조차 못 얻는 수가 있고 한 그릇 밥으로도 일생 그 은혜에 감격하게 하는 수가 있다.
사람 마음이 지니는 모순(矛盾)이여! 우리 마음 또는 뇌가 변화치(變化値)를 인식하도록 되 어 있어 일어나는 문제일 것이다. 변화치의 인식 후 가치를 부여하는 문제는 그 사람의 뇌 에 따라 다시 결정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뇌나 마음이 비슷하게 생겨있는 사람끼리는 쉽게 공감(共感)할 수 있고 은혜나 환심도 또한 똑같이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나 그렇 지 않은 사람끼리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37
한 쪽 말만 믿음으로써 간사한 사람에게 속지 말 것이요, 제 힘을 너무 믿어 객기(客氣)를 부리는 바가 되지 말 것이며, 저의 장점으로서 남의 단처(短處)를 드러내지 말 것이요, 나의 졸(拙)함을 인하여 남의 능(能)함을 미워하지 말 것이니라.
毋偏信而爲奸所欺 毋自任而爲氣所使 毋以己之長而形人之短 無因己之拙而忌人之能
무편신이위간소기 무자임이위기소사 무이기지장이형인지단 무인기지졸이기인지능
사람에게는 제각기 장단이 있나니 자기의 장점으로써 남의 단점을 지적하여 드러내지 말 것 이요 자기가 그 일에 졸렬하다 해서 타인의 능력을 시기해서는 안 된다.
모자라는 능력을 탓하며 미워하게 된 나머지 소원(疎遠)하게 되었다. 요철(凹凸) 관계로 서 로를 보완(補完)할 수 없이 서로의 단점만을 부각(浮刻)시키고 말았다. 때로는 자신의 장점 을 보강(補强)하여 색깔을 뚜렷이 하고, 때로는 장점을 감추고 단처를 보완(補完)하여 상대 에게 맞춘다. 결국, 양자간의 균형(均衡)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성공한 인간관계가 아 니라 하여 무엇을 후회하며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인생을 이렇게 저렇게 그리다 보면 그 중 에는 잘 그려진 그림도 있겠지만 못 그려진 그림도 생기는 게 아니겠는가. 담담히 받아 들 일 일이지 초조해 하거나 정답이 있었는데 하며 후회할 일은 아닐 것이다. 바둑처럼 인생사 도 승률은 결국 반반(半半)이지 않겠는가.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는 축에 들어야 한 다고 우기지 않아도 좋지 않겠는가. 공동묘지에 묻힌 수 많은 묘지의 주인공들도 한 세상 살아가던 때에는 다들 사연이 있었을 터이겠지만, 그들 모두가 인간관계에 성공한 달인(達 人)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은 마음의 놀이터, 놀 수 있는 동안 이런 놀이 저런 놀이를 즐길 일이지, 항상 이기는 놀이만을 생각할 일은 아닐 것이다. 2000년 07/30
39
음침하니 말 없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 속이 음험(陰險)한 인물이니 그 사람으로 더불어 간 담을 헤쳐 놓고 심중의 일을 말하지 말라. 발끈하고 성내기 쉬운 성질로서 호언장담으로 득 의연(得意然)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올바르지 않은 법이니 그러한 사람은 경원(敬遠)할 것 이요 찬성하거나 충돌하지 말 것이니라.
40
남의 속임수를 알지라도 말로써 나타내지 않으며 남의 모욕을 받더라도 얼굴빛을 바꾸지 않 는다면 이 속에 무궁한 뜻이 있으며 또 무궁한 덕이 있다.
覺人之詐 不形於言 受人之侮 不動於色
각인지사 불형어언 수인지모 부동어색
42
진실로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은 온 세상이 그르다고 해도 그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다수 인의 의심을 두려워하여 자기의 신념을 꺾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기의 뜻에 거슬린다 해 서 도리에 합당한 남의 말을 처음부터 막아 버려서는 안 된다. 사사로운 작은 은의(恩誼)에 붙잡혀서 대국(大局)의 공론을 반대해서는 안 되며 또한 허황한 여론을 이용함으로써 남을 공격하여 사정(私情)을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공사(公私)를 분별하고 신념과 감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바야흐로 대사(大事)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
스스로의 소유(所有)가 많으면, 아무리 총기(聰氣)가 있어도 사욕(私慾)을 버리기 어려울 것 이다. 사욕이 있는 한, 어찌 공평(公平)하게 판단(判斷)할 수 있을까. 바르게 판단하기 위해 서라도 소유(所有)는 줄여야 할 것이다.
43
몹쓸 사람일지라도 쉽게 내칠 수 없거든 미리 발설하지 말라. 뜻 아닌 재앙을 부를까 두렵 다.
惡人 未能輕去 不宜先發 恐招媒蘖之禍
악인 미능경거 불의선발 공초매얼지화
그루터기 얼, 초목을 베어내고 남은 부분. 매얼(媒蘖)은 술밑과 누룩을 가지고 술을 빚음. 전 (轉)하여 죄를 양성하여 모해함. 죄에 빠뜨림.
48
간악(奸惡)한 사람을 제(除)하고 망녕(妄 )된 무리를 막으려면 한 가닥 길을 열어 줘야 한 다.
鋤奸杜倖 要放他一條去路
서간두행 요방타일조거로
재주 있을 녕, 말 재주 있을 녕, 아첨할 녕. 허망할 망, 거짓 망.
권선징악(勸善懲惡) 정도라면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악(惡)을 뿌리채 뽑는다거나 요마(妖魔) 를 참살(斬殺)하는 정도에 이르게 되면 그것은 넌센스일 뿐이다. 선과 악이라 한들 수많은 대립되는 가치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오직 선(善)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정도로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애초부터 그렇게 단순한 문제였다면 악이라는 대립되는 가치가 아예 생겨나지 않았거나 생겨났다 해도 금방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선과 악의 문제에도 협상 (協商)의 정신이 끼어들 여지는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악과도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 이 인간성에 대한 옳바른 인식에 가깝지 않겠는가? 우리 문화가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역사가 깊다. 그것들은 근미래(近未來)에도 결코 사라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악을 단순히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규정하고 있는 우리들의 도덕적 시각은 아마도 악에 대한 우 리의 이해 부족이나 또는 나아가 인간성(人間性)에 대한 우리들의 미숙한 이해 외에 아무 것도 아닐 지 모르겠다. 선과 악도 생물학적 관점인 진화적 안정화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그 본질을 파악하는데 아마 더 도움이 되지 않 을까. 선과 악도 '하나의 전략(One of Strategies)'으로 보게 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49
마땅히 사람으로 더불어 허물을 같이 할지언정 공(功)을 같이 하지 말라. 공(功)을 같이 하 면 서로 시기(猜忌)하리라.
當與人同過 不當與人同功 同功則相忌
당여인동과 부당여인동공 동공즉상기
미워할 기, 시기할 기, 꺼릴 기, 기일 기. 부모 또는 조상이 죽은 날.
어떤 우화(寓話)를 생각나게 한다. 바람과 해가 서로 사람의 옷 벗기기 내기를 하여 해가 이 겼다는 얘기. 어려움을 함께 하면 애정이 생겨난다. 전우애(戰友愛)가 그렇고 조강지처(糟糠 之妻)란 말이 그렇다. 그러나 호사(豪奢)하게 되면 사정은 그 반대가 된다는 것이 또한 인지 상정(人之常情)인 모양이다. 의가 좋은 사람을 갈라놓으려면 시련을 안겨주는 것보다 호사를 안겨주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출세하기 전까지는 친구니 선후배니 하며 어울려 다니다가, 막상 출세하고 나서는 모임 자체가 아예 허물어지는 경우를 제법 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인정(人情)이란 것은 꽤나 생물학적(生物學的) 근거를 갖는 정서(情緖)인 모양이다.
51
굶주리면 달라붙고 배부르면 뽐내며, 따뜻하면 몰려들고 추우면 떠나가나니, 슬프다 인정의 똑같은 병폐여라.
饑則附 飽則 則趨 寒則棄 人情通患也
기즉부 포즉양 욱즉추 한즉기 인정통환야
따뜻할 욱. 향할 추, 종종걸음으로 빨리 걸을 추.
세상 인심이란 것이 굶주리면 먹이는 자에게 붙고 배가 부르게 되면 바람이 들어 좀더 잘 되려고 쌀쌀하게 떠나가는 법이다. 따뜻한 곳에는 우우하고 몰려들었다가도 추워지면 팽개 치고 돌아보지 않는다. 이것이 고금동서(古今東西)에 다름 없는 인정(人情)의 공통된 병이 다.
그렇게 타고난 것을 굳이 병(病)이라고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그와 같은 인심(人心)은 생존 (生存)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탓한들 소용 없는 일일 것이다. 몰락(沒落)한 자신 을 버리고 떠난 이들에게 앙분(怏忿)을 품고, 복권(復權)하여 살생부를 만들어 벼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옛날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분풀이 외에 또 무엇이겠는가?
여자 친구가 없는 남학생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여자 친구를 사귀려면 돈이 많은 부모를 두었거나, 아니면 네가 많이 벌거나, 벌 가능성이 있거나 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앞의 것 들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니, 생략한다. 사랑의 과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과연 인간은 문화니 도덕이니 하는 미명(美名) 하에 생물학적 바탕으로 부터 얼마만큼 멀리 떠나와 있는 것일까?
56
옛 친구를 만나거든 친밀의 정을 다시 새로이 하라. 심심하게 대하면 옛정이 서운해진다. 비 밀한 일을 당할 때는 자기의 심적(心跡)을 공명(公明)하게 밝히는 태도를 가지라. 어물어물 하면 세상의 오해를 받는다. 쇠운(衰運)에 든 노폐(老廢)의 사람을 대하거든 이전에 번성할 때 만날 적보다 더 정중히 대접해야 한다. 불운한 사람을 허술하게 대접하는 것은 덕(德)을 상(喪)하고 복(福)을 깎는다.
57
부지런함으로써 군자는 허물을 줄이나 소인은 재물을 늘린다. 검박함으로써 군자는 소유를 줄이나 소인은 인색(吝嗇)하게 되고 만다.
60
선비가 권문(權門)과 요로(要路)에 있을 때는 몸가짐은 엄정(嚴正)하고 명백해야 하며 마음 은 항상 온화하고 평이해야 하나니, 조금이라도 '비린내 나는 무리'를 따라 가까이 하지 말 것이며 또한 너무 격렬하여 독침(毒針) 가진 자를 범하지 말지니라.
士君子 處權門要路 操身要嚴明 心氣要和易 毋少隨而近腥 之黨 亦毋過激而犯蜂 之毒
사군자 처권문요로 조신요엄명 심기요화이 무소수이근성전지당 역무과격이범봉채지독
수는 따를 수, 뒤따를 수. 날고기 성, 비릴 성. 누린내 전, 누린 고기 전. 조금이라도 뒤따라 가 성전의 무리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전갈 채.
선비가 천하에 뜻을 얻어 권문요로(權門要路)에 있게 되면 그 몸가짐과 행실은 엄격하고 명 백하게 해야 하고 심기(心氣)는 항상 온화하고 평이해야 하나니, 조금이라도 방종(放縱)하거 나 사리(私利)에 급급(汲汲)한 무리를 가까이해서는 안 되며, 또 너무 격렬하여 벌떼 같은 소인들의 반항을 초래하여 그들의 독침에 쏘여서는 안 된다. 성전(腥 )은 피비린 냄새이니 성(腥)은 어육의 냄새, 전( )은 수육(獸肉)의 냄새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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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官職)에 있는 이를 위하여 두 마디 말이 있으니, 가로되 "오직 공정(公正)하면 명지(明 知)가 생기고 오직 청렴(淸廉)하면 위엄(威嚴)이 생긴다"함이 그것이요, 집에 있는 이를 위 하여 두 마디 말이 있으니, "오직 너그러우면 불평이 없으며 오직 검소하면 모자람이 없다" 함이 그것이다.
居官 有二語 曰惟公則生明 惟廉則生威 居家 有二語 曰惟恕則淸平 惟儉則用足
거관 유이어 왈유공즉생명 유염즉생위 거가 유이어 왈유서즉청평 유검즉용족
"오직 너그러우라, 불평이 없을 것이요, 오직 검약하라,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까다로우면 가족이 불평하고 낭비하면 항상 모자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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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가짐은 지나치게 깨끗하지 말 것이니 때묻고 더러움을 다 용납할 것이요, 사람과 사귐에 는 너무 분명하지 말 것이니 선악(善惡)과 현우(賢愚)를 함께 포용해야 한다. 몸가짐은 지나치게 결백하지 말라. 모든 더러움을 다 용납하여 삼킬 수 있어야 한다. 사람으 로 더불어 교제함에는 좋아하고 싫어함을 너무 분명히 하지 말 것이니 선인, 악인, 현인, 우 인을 다 포용해야 한다.
인생을 모범답안지처럼 살라고 요구하는 데는 한도가 있을 것이다. 잘 실천할 수 없었다. 항 상 기호(嗜好)를 그만 밝히고 마는 편이었다. 포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마음에 편 하였다. 인생은 마음의 놀이터, 인생은 자기 표현, 그러므로 제 색깔을 뚜렷이 하는 쪽을 취하고 색 깔을 옅게 만드는 쪽을 취하지 않았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어릴 때는 뚜렷했으나 나이가 듦 에 따라 무디어지는 탓인지, 선악과 현우도 어릴 때에 비하면 더 많이 포용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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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을 상대로 해서 원수를 맺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상대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폭력과 욕설의 세계로부터 지금은 벗어나 살고 있다. 그러나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런 것 들이 몸 가까이 있었다. 집에 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싸우며 내 지르던 악다구니 소리들이 있었고, 교실의 한 귀퉁이에는 주먹다짐과 위협이 있었으며, 그리고 유원지에는 깡패가 있었 다. 몸이 왜소했던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낼 수단이 없었다. 대학에 진학하자,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따라 오지 않았다. 석사과정이며 박사과정에선 사정이 더 좋아졌다. 지금이라고 해서 싸울 일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욕설과 주먹다짐으로 싸우는 일만큼은 확실 히 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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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은혜는 받은 것이 비록 깊을지라도 갚지 않고 원망은 얕을지라도 이를 갚으며, 사람 의 악(惡)을 들으면 비록 명백하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고 선(善)은 드러나도 또한 의심하나 니, 이는 각박함의 가장 심함이라 마땅히 간절히 경계할 일이다.
受人之恩 雖深 不報 怨則淺亦報之 聞人之惡 雖隱 不疑 善則顯亦疑之 此刻之極 薄之尤也 宜 切戒之
수인지은 수심 불보 원즉천역보지 문인지악 수은 불의 선즉현역의지 차각지극 박지우야 의 절계지
숨을 은, 숨길 은. 보이지 아니함, 나타나지 아니함.
남에게서 받은 은혜는 큰 것이라도 갚으려 하지 않으면서 남에 대한 원한은 조그만 것이라 도 곧 갚으려 하며 남의 나쁜 소문을 들으면 그것이 불확실하여도 그대로 믿어 버리면서 남 의 좋은 행실을 들으면 명백한 일이라도 믿지 않으려 드는 것이 보통 인정이요 또한 폐단이 다. 얼마나 경박(輕薄)하고 잔인(殘忍)한 일인가. 마음 있는 사람은 자계(自戒)하여 이런 일 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의 은혜(恩惠)는 깊어도 갚지 않으면서 원한(怨恨)은 얕아도 갚고야 만다. 남의 악(惡)은 숨어 있어도 그대로 믿어 버리면서 선(善)은 드러나도 의심하고야 만다.
75
술잔치의 즐거움이 잦은 집은 훌륭한 집이 아니다.
77
어진 사람은 마음 바탕이 너그럽고 편안한지라, 복이 두텁고 집안의 길경(吉慶)도 오래 가나 니 일마다 너그럽고 기상(氣象)이 펴일 것이요, 마음이 천한 사람은 생각 머리가 편협(偏狹) 하고 비좁은지라, 받은 바 녹(祿)이 박하고 자손에게 끼치는 은택(恩澤)도 짧을 것이니 일마 다 좁고 규모가 오그라지리라.
자주 시비(是非)함으로써 인생을 까다롭게 풀리도록 만들고 만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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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章)은 사람들을 천거(薦擧)하는 사람을 위하여 경계(警戒)한 것이니 또한 사람을 쓰는 사람의 계명(戒銘)이 될 것이다. 남의 나쁜 일을 고(告)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를 가벼이 믿고서 그 죄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러한 눈치를 알면 남을 모함하기 좋아하는 자 가 저의 분노와 원한을 갚기 위하여 타인의 악사(惡事)를 거짓 만들어서 고(告)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의 선사(善事)를 고(告)하는 자가 있어도 당장 그것을 믿어 친히 하여서 는 안 된다. 만일 곧 신용해서 친하는 줄 알면 간악한 자가 조그마한 선사(善事)로써 나의 뜻에 맞추어 입신출세(立身出世)를 기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고 믿고 쓰는 데는 한 결같이 신중하고 치밀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84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라.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이 절로 꺼지리라. 마음이 게을러지거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생각하라. 정신이 절로 분발하리라.
무슨 일이든지 뜻대로 되지 않고 곤경에 빠지게 되거든 아직도 나만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원망하고 허물하는 마음이 절로 사라질 것이다. 마음이 게을러지거든 곧 이 세상 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많음을 생각하면 자연히 정신이 분발하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분발할 수 있었던 것은 나보다 처지가 나은 이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여 내 자신 을 채찍질했기 때문임을 부인(否認)하긴 어렵다. 그러나 분발할 수 있었던 만큼 고통도 만만 치는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거저 내 자신의 보속(步速)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배짱을 내가 계속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85
마음이 기쁨에 들뜬 나머지 일을 가벼이 맡지 말고, 취(醉)함을 인연(因緣)하여 화를 내지 말라. 마음이 즐겁다 하여 일을 많이 하지 말고, 곤(困)함을 핑계하여 끝마침을 적게 말라.
89
군자는 환난(患難)에 처하여 근심하지 않으나 즐거운 때를 당하여 근심하며, 권세 있는 사람 을 만나 두려워하지 않으나 의지(依支) 없는 사람을 대하여 안타까워하나니라.
君子 處患難而不憂 遇權豪而不懼
군자 처환난이불우 우권호이불구
성경(聖經)에 이르기를 의지 없는 자의 밭을 뺏지 말라 하였다. 이유는 하나님이 그의 편이기 때문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