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서체
한문서체에 나타나는 갑골문, 금문, 전서, 예서, 초서, 해서, 행서를 살펴보자
갑골문(甲骨文)
갑골문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준말이다. 갑골문은 은나라 때에 점을 치기 위한
정복문(貞卜文)과 그 당시 사실을 적은 기사문(記事文0이다. 곧 제사. 전쟁. 사냥.
농사. 질병에 대한 길흉을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서 거북의 배 부분의 뼈나 소와 사슴의
어깨뼈에 정인(貞人)이나 제주(祭主)가 의문이나 해답 그리고 점친 후의 징험들을
새겼다. 갑골문은 상형문자에 가까우며, 예리한 공구로 새겨서 직선이 많으며 획의
끝이 뾰족한 것이 그 특징이다. 갑골문은 1899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금문(金文)
금문은 청동기 시대의 산물로 그 대부분이 종정(種鼎) 곧 종이나 솥 따위에
주각(鑄刻)하였으므로 종정문이라고 부른다. 그릇, 무기, 거울, 도장, 돈 같은 것에도
발견된다.동기에 문자를 기록하는 것은 상(商)에서 한(漢)대에까지 이른다. 상대의것은
그림문자도 많으며,대개의 금문은 갑골문을 계승하고 진(秦)대의 소전(小篆)에
이어지는 대전(大篆)이다.
전서(篆書)
전서는 대전에 소전으로 나뉜다. 대전은 주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나라 때 사주(史주)가
문자의 짜임을 실용적으로 간소화시켰으므로 붙여졌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주대의
석고문(石鼓文)이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문자의 통일을 꽤 할 때에 이사(李斯)가 대전의 서체를 더
간략하게 만들었는데 그 서체가 소전이다. 소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진시황의 공적을
기록한 태산각석,낭야대각석, 역산비가 있다. 소전은 모두가 원필이며 아래위로 길다.
예서(隸書)
전서는 대칭을 맞추어야 하고 곡선이기 때문에 쓰기에 불편하다. 그리하여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고 원필도 방필로 많이 바꾸고, 필획도 줄여서 쉽게 쓰게 한 것이
예서(隸書)이다.
기록에 보면 예서는 장막(程邈)이 만들었다. 그가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 십 년을
연구하여 예서 삼천자를 지어 진상하였는데 진시황이 좋게 여겨 어사를 시켰다.
예서란 말은 진대의 복역수를 도예(徒隸)라 하였는데 정막이 그러했으므로 예(隸)자를
따서 지었다.예서에서 파책(波책)이 없는, 곧 전서와 근접한 것을 고예(古隸)라 하고
파책이 있는 것을 팔분(八分)이라 한다. 예서는 전한과 후한에 걸쳐 끊임없이 발달하였다.
조전비와 예기비 같은 유려형(流麗型),장천비 같은 방정형(方整型), 하승비(夏承碑)같은
기고형(奇古型)들로 분리되며, 그 수많은 서적(書蹟)은 이루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예서의 자형은 납작한 것이 보통이다.
초서(草書)
한나라 때 예서가 주로 쓰였지만 초서의 기원이라 볼 수 있는 특유한 서체가 대나무나
나무조각에 쓴 편지글 등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이 곧 장초(章草)이다. 장초는 획이
예서와 비슷하나 글씨의 짜임은 초서에 가깝다. 장초의 장(章)은 사유(史游)가 지은
급취장(急就章)의 서체에서 이름 붙여졌다.
장초는 그 뒤에도 계속 발달하여 왕희지에 이르러 초서의 완전한 체계를 굳히게 되었다.
해서(楷書)
예서가 더 실용적으로 변모하면서 위진 남북조 시대에 와서 해서의 특유한 풍격을
이루었다.해서는 지금의 정자(正字)인데 북위 시대의 것을 위시하여 이른바
'육조(六朝)풍'의 해서가 유명하다. 종요와 왕희지를 거쳐 초당의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이 북위서를 계승하고 왕희지법을 더하여
방필에 원필을 가미한 완미(完美)에 가까운 체계를 이루었고 그 후 안진경이 출현하여
거의 원필을 이용하여 웅장한 남성적인 해서를 완성하였다. 해서의 자형은 정방형에
가깝다.
행서(行書)
행서는 초서와 해서의 중간 형태로 아마 해서와 거의 동시에 생겨나서 발전했으리라고
짐작된다.왕희지의 난정서(蘭亭書)는 고금에 빛나며 그 후 당의 저수량과 안진경을
거쳐 청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발달하였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해서, 행서, 초서가 널리 쓰이면서 당 이후에는
전서와 예서가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청나라 초기와 중기에 비학의 풍토가 일어나면서
다시 문인묵객의 작품에전서와 예서가 등장하여 지금까지도 작품에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한글 서체
한글 서체는 판본체, 혼서체, 궁체로 나뉜다.
판본체
판본체는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글씨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정음체(正音體)라고도 한다. 판본체는 훈민정음과 동국정운같이 원필체로
쓰인 것과 월인천강지곡, 용비어천가같이 방필체로 쓰인 것으로나뉜다. 마치 한자의
전서가 원필이어서 쓰기에 불편하여 방필인 예서로 변모했듯이 판본체도 원필에서
방필로 바뀌었다. 훈민정음의 모음은 하늘, 땅, 사람의 삼재(三才)에 바탕을 두었고
자음은 인체의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뜬 것이어서 상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비록 표음문자이기는 하지만 그 깊이와 아름다움은 실로 신비롭기
그지없다.
혼서체(混書體)
혼서체는 필사체(筆寫體)라고도 한다. 판본체의 획이나 글씨의 짜임이 자못 도식적
이어서 쓰기에 불편하였으므로 성종 시대를 전후하여 한자의 해서처럼 쉽고 자연스럽게
쓸 수 있도록 변모하였는데 이것이 곧 '월인석보'나 '두시언해'에서 볼 수 있는 양상이다.
이 필사체는 거의가 국한문 혼용으로 쓰였으므로 혼서체라 한다.
판본체의 점과 획들에 기울기나 강약이 생기는 따위로 한글의 뚜렷한발전을 보여 주는
면이 있는데 이것이 차차 정리되면서 궁체가 형성되었다.
궁체(宮體)
숙종 시대에 이르러 궁중에서 궁녀들에 의해 새로운 글씨가 정리되면서 여성들의
성격과 생리에 꼭 알맞는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궁체가 형성되었다. 궁체에는
정자와 흘림과 진흘림의 세가지가 있는데 편지글, 소설, 계율서, 번역서에 두루 쓰이며
뛰어난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다. 여기서 정자는 해서, 흘림은 행서, 진흘림은 초서에
비유할 수 있다.
출처: 다음 오픈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