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세상/서예이야기

서체(書體)의 종류

bogokjh 2011. 8. 20. 19:52

 

서체의 종류

 

 

 

    가. 한글

 

      (1) 고체(판본체) : 반포체(頒布體)라고도 한다.

 

      (2) 모방체(模倣體) : 효빈체(效嚬體)라고도 한다.

 

                            주로 한자의 행초체를 모방한 서체로서 반포

 

                            체에 비하여 서사에 신속을 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효종 때를 전후 하여 전성하

 

                            였다.

 

      (3) 궁체(宮體) : 반포체는 해독에는 편리하였으나 서사에 곤란

 

                            하였고, 모방체는 서사에는 편리하였으나 해

 

                            독에 불편한 까닭에 양자를 지양해서 국문자

 

                            에 알맞는 세체의 출현이 요구됨에, 궁중의

 

                            내관들과 상궁들이 쓰던 글자가 표본이 되어

 

                            새로운 서체가 보편화 되었는데 이것이 곧 궁

 

                            체이다.

 

                            한문과 마찬가지로 정자, 흘림(반흘림, 진흘

 

                            림)이 있다.

 

      (4) 잡체(雜體) : 궁체 발생 이후에도 그와 교섭을 갖지 못한

 

                            부류들이 자기류로 쓴 서체를 말한다.

 

      (5) 조화체(調和體) : 위의 4가지 서체는 通時的인데 비하여 이 서

 

                            체는 共時的인 것으로 국한문 혼용이란 특수

 

                            조건에서 생긴 서체로, 주로 한학자들 서체에

 

                            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나. 한문서체의 종류

 

한자는 시대에 따라 또는 필요에 따라 쓰는 형태가 바뀌어 왔다.

 

한번은 세로로 길쭉한 모양의 서체가 성행하면 다음에는 가로로 넓은 서체가 유행하였다. 이러한 서체의 변화는 한나라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중국 서예사는 한나라 말을 기준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한말 이전에는 서체가 변천해 가는 시기이며 글씨가 예술이 된다는 분명한 생각이 없이 글씨를 쓰고, 쓰는 김에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서체는 여러 모양으로 바뀌어 오늘날 이야기하는 서체의 모든 종류가 이시기에 이미 완성되었다.

 

서체의 종류라고 하면 흔히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의 5종류를 말하지만 사실은 좀더 여러 가지 이다.

 

 

 

(1) 갑골문(甲骨文)

 

 

 

 

 

 

 

 

 

 

 

 

갑골문이란 거북이 배 껍질〔腹甲〕이나 소의 어깨뼈〔牛肩骨〕에 새긴 글자를 말한다.

다른 말로는 복사(卜辭), 계문(契文)이라고도 한다.

갑골문은 1899년 중국 은(殷)나라 수도가 있던 자리〔殷墟〕인 현 하남성 안양현 소둔촌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이후 국가에서 동작빈을 중심으로한 여러 학자들에게 대대적으로 발굴작업을 하도록 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읽을 수 있는 글자는 현재 1,000여자로 알려져 있다.

갑골문을 발견한 이후 서예는 새로운 매체를 얻어 표현의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문자배열방식이 세로쓰기(동물의 모양도 세워서 표현),

오른쪽부터 쓰기가 이미 이때 시작되었다는 점,

글자의 좌우, 상하 배열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반문(反文)의 근거가 확인되었다는 점 들은 서예사적으로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2) 금문(金文)

금문이란 상(商)·주(周)시대의 청동기에 주조하여 만든 글씨를 말한다.

다른 말로는 종정문(鐘鼎文: 종이나 솥에 주로 새김), 이기문( 器文:제사에 쓰던 그릇에 주로 새김)이라고도 한다.

금문은 한 대에 이미 발견된 흔적이 있으나 송대 구양수가 지은 집고록에 금문에 관한 자료가 상당수 실려 있다고 한다.

금문은 제사나 국가적인 의식목적으로 제작되어 의젓하고 장중한 맛이 나는 것으로 일반서민의 생활 용품 이라기보다는 기념하는 용도로 쓰였다. 또한 글씨는 쓰는 것 이외에 거푸집에 주물로 만드는 특이한 과정 때문에 새겨진 글씨는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 전서(篆書)

  전서는 크게 대전과 소전으로 나뉜다.

대전(大篆)은 진(秦)나라의 이사(李斯)가 소전을 만들기 이전의 글자(갑골문 포함)를 모두 합쳐 대전이라 하고, 이후의 글자를 소전(小篆)이라 한다.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승상 이사(李斯)의 주도로 지금까지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쓰던 글자들을 통일하여 글자를 만들었다. 이를 소전(小篆)이라 한다.

소전은 자형이 세로로 긴 형태이며, 선과 획이 정확히 대칭을 유지하고 있고, 운필에서 중봉과 장봉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전 (연산각석1)                           소전(연산각석2)                                          대전 ( 석고문 - 현존하는 가장오래된 석각자)

 

 

(4) 예서(隸書)

예서는 옥졸관리들이 문서를 작성할 때 빠르고 쉽게 쓰기 위하여 전서를 간략하게 해서 만든 서체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죽간. 목간이 발견되면서 소전이 쓰이던 秦 나라 때 이미 예서의 초기형태가 쓰여 지고 있었고, 1975년 호북에서 "운몽수호지진간(雲夢睡虎地秦簡)"이 발견되면서 전국시대 말기 또는 진나라 초에 이미 예서의 흔적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그 동안 알려져 왔던 대로 "대전→ 소전 → 예서" 로 바뀌어 왔다는 설은 옳다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대전에서 일부는 소전으로 일부는 예서로 나란히 발전해왔다고 보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러한 예서 이후에는 글자 획에 더 이상 더하거나 빼는 것이 없고 정형화되었으며(隸化), 이에 따른 변화와 예술성은 다음과 같이 넓어졌다.

① 둥금이 변하여 모가 남 (變圓爲方)

② 구부러짐이 변하여 곧음이 됨 (變曲爲直)

③ 끊어지고 이어짐이 조절됨 (斷連調節)

④ 필획을 생략하고 감하였음 (筆劃省略)

⑤ 세로가 변하여 가로로 됨(變縱爲橫)

⑥ 필획 변형이 풍부해 짐

위와 같이 예화(隸化)는 전서체를 써오던 그 때까지 여건에 비해서 한자 자체의 큰 개혁이었으며 또한 모필의 특성과 지완(指腕)운동의 해방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과 해방으로 인하여 초서, 해서, 행서가 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예(古隸)한예(漢隸)로 구분하기도 한다. 고예는 진예(秦隸), 전한예(前漢隸)의 일부와 같이 파책이 불분명한 것을 말하며, 한예는 후한에 들어 파책이 분명하게 나타나서 예서가 꽃을 피우는 시기의 서체를 말한다. 파책이 분명한 후한의 예서를 팔분이라 말하기도 한다. 

 

 

목간을 소재로 한 작품

 

   

한나라  예서                                    

 

(5) 초서(草書)

초서는 한나라 때 이미 성행하였다.

초전, 초예, 장초, 금초 따위 초고로 대강 쓴 모든 글씨를 초서라 하고, "예법을 풀어서 급한 상황에 부응하기 위하여" 쓴 글씨라 알려졌다. 그러나 초서의 특징은 필획이 갈고리처럼 얽혀서 연결되는 것(鉤連性)이므로 "예법을 풀어서 급한 상황에 부응하기 위하여" 라는 것은 정확한 설명이 못된다. 초서는 크게 장초와 금초로 나뉜다. 장초(章草)는 초기 초서와 한예가 서로 더해져 고상하게 쓰인 것으로 파책이 남아있으며 글자마다 각각 독립되게 쓰였다. 금초(今草)는 동진시대 왕희지형성한 초서로서 여러 글자가 연결된 오늘날의 초서 형태를 말한다.

 

  

    

 

 
 

▶ 東晉 왕희지 (虞安吉帖)          ▶明 왕탁 초서임서(박원규)

 

 

 

(6) 행서(行書)

행서는 자체가 아니라 서체일 뿐이다. 행운유수(行雲流水)의 필세라 고도 한다.

행서는 후한 유덕승(劉德升)이 만들었다. 즉, 정서(正書)가 좀 어그러지고 편리함을 힘써 추구하며, 서로 간에 흐름이 있는 것을 행서라 한다. 또한 진서(眞書)도 초서(草書)도 아닌 이것을 행서라 한다.

   

  

 

                                                             

 

                  

 

▶ 唐 안진경 (쟁좌위고)

▶ 東晉 왕희지 (난정서)

 

 

 

(7) 해서(楷書)

위로는 서한(西漢)에서부터 시작되어 수당(隋唐)에 이르는 기간동안 그 기원을 제시하며 여러 설이 많다. 일반적으로 육조시대 묘지명을 통해서 해서가 정착되었다고 본다. 해서란 그 시대의 표준자체를 말한다. 해서는 정서(正書) 진서(眞書)라 불렀으며 당대이후 천천히 정형화되었다.

옛날에는 해서와 예서의 구분 기준을 파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랐지만 사실, 해서에도 파책이 있으므로 합리적인 구분기준은 되지 못한다. 실질적인 구분 기준은 구획(갈고리)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야 할 것이다. 구획은 상당히 어려운 획인데도 서체가 변천하는 원리인 간단함과 빠름을 구하면서도 여기에 아름다움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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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본 서체의 발전과정을 종합해 보면 대전(大篆)에서 소전(小篆)이 만들어 졌지만 동시에 예서도 태어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때 예서는 죽간과 목간 그리고 백서 따위가 민간에서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미 예서목간 뿐 아니라 행서목간과 초서목간도 쓰고 있었다. 그 뒤 예서는 한예로 발달하였고 행서도 왕희지 때문에 크게 발전 하였으며, 예서와 행서를 바탕으로 하여 해서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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